최근 나는 한 마디로
'감정 과잉' 상태였다.
우울감의 뿌리는 상실이지만, 그 속에는 정반대의 질감이 있다.
공허하고 메말라 비틀어지고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질감과
축축하고 무겁게 끌어당겨져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질감이 있는데,
요즘 나는 후자였다..
눈을 뜨고 하루를 보내는 동안 모든 요소들이 하루종일 나를 후려치는데
내가 컨트롤 할 수 있는 것들이 하나도 없었다.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소음으로 눈을 뜨거나, 그냥 이유 없이 눈을 떴다.
회사에 가면 일이.............(너무 할 말이 많아 생략)
무엇보다도 요즘 가장 큰 스트레스와 변화는.. 회사 사람이 데리고 오는 개였다.
나는 이 일 때문에 내 고양이를 돌보지 못하는데, 그 사람은 이곳에서 일하기에 강아지를 데려올 수 있었다.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여기에 다 쏟아내기 힘들 정도로 온갖 생각이 들어서 힘들었다.
개는 다들 귀여워하니까 괜찮겠지? 하는 근본적인 마인드에서 오는 많은 배려 없는 일들이 나를 너무 화나게 했다.
조용하고 얌전한 개를 가끔 데려오는 거면 뭐라 할 이유가 없었다.
그분이 그 개를 데려오기 전까지는.. 그냥 다른 상사가 키우는 개 한 마리가 있는데, 그 개가 가끔 놀러 오는 정도였다.
그 개는 딱히 사고도 안 치고 그냥 귀여웠음.
난 애초에 개든 고양이든 동물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 새로 온 개는 매일, 정말 하루종일 사무실에 있다.
여러모로 감내하기 힘든 부분이 너무 많았다.
내 뒤에서 갑자기 큰 소리로 짖을 때마다 심장이 덜컹거렸고, 나는 회사에서 절대 안 끼던 헤드셋을 끼고 일하기 시작했다.
외부 업체 미팅 때문에 문을 닫아놓으면 우렁차게 짖는다.
내가 뭘 먹을라치면 오줌을 밟은 발로 날 막 밟으면서 참견한다. (아직도 실내배변만 함)
사원들의 물건을 물고 도망가고 다 뜯어 놓는다. 사무실 의자고 벽이고 뭐고 다 뜯어 놓는다.
식물도 다 뜯어먹고 화분 돌도 다 씹어먹어서 화분 위치도 다 바뀌고.. 기존에 아무렇지 않게 놓던 물건도 다 숨기고..
그 외에도.. 너무 많은 일들이 있다. 교육이 제대로 되는 건지도 솔직히 모르겠다.
진지하게 저 정도면 문제견 솔루션 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 여러 번 생각할 정도였다.
올해 초에 받았던 알레르기 검사에서 개 알레르기가 약하게 나왔었는데..
몇 달 동안 하루종일 부대끼며 같이 지내서 그런 건지, 사무실 안에 개털이랑 타액 등등 계속 쌓여서 그런 건지..
콧물, 재채기, 무기력함, 눈코 간지러움 등등 알러지 반응이 갑자기 확 올 때가 있다. 일에 집중을 하지 못한다.
안 그래도 야근도 잦고 제대로 푹 자지도 못하니 면역력이 바닥인데.. 미칠 것 같다.
오늘도 하루종일 일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생리까지 겹치면 그냥 최악이다.
개 냄새, 실내 배변 냄새, 소음 그냥 전부 다 꾹 참았다.
말을 할 수가 없는 분위기니까..... 애초에 다른 직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개를 데려온 것도 아니었다. 그냥 데려왔다.
우리더러 앞으로 잘 돌봐주세요 라고 했던 것도 기억난다 ㅋㅋ
왜? 개는 귀엽고 다들 좋아할 테니까. 기본 마인드.
심지어 버릇도 잘못 들여서 이제 입질까지 하는데 대형견이라 아무리 강하게 제지하고 꿀밤까지 먹여도 끄떡을 안함;
물면 놓지 않기까지해서.. 심히 걱정 됨.
그리고 주인은 외근 일정있으면 사무실에 개 덜렁 두고 나간다.
그 시간동안 밥주고 똥치우고 다른 직원들이 함.
하.........암튼 여기 적은 내용들은 빙산의 일각임.
이 몇 달 동안 내가 우리 고양이를 본 시간보다 그 개를 본 시간이 많은 것 같다고 느껴지는 순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런 나에게 우리 집 고양이로 해놓은 프사 보면서 안 귀엽다느니, 사진 좀 잘 찍어보라느니.. 그런 말을 들으면 어느 누가 안 빡치겠냐고.
이러다 보니 그 개는 물론이고 개 자체가 싫어지려고 했다..
개는 잘못이 없고 주인이 잘못이라지만.. 모르겠다. 그냥 너무 지치고.. 제발 회사에서 보고 싶지가 않다.
회사에 개를 데려오는 건 주변 동료들에게도 최고의 복지니 뭐니 제발 닥쳤으면 좋겠다.
지 새끼 지나 귀엽지... < 사람한테만 적용되는 게 아님.
왜 회사에서 내가 남의 집 새끼를 공동육아 해주고 있는 지를 전혀 모르겠다.
나보고 똥 치우라고 말하는 순간 그 자리에서 퇴사 선언하기로 마음을 굳게 먹은 상태다.
내 앞으로 굵직한 일들이 몇 개 들어와 있는 상태인데, 그거까지 마치고 가려면 이 회사에 최소 2년은 발이 붙잡힌다.
최대한 빨리, 늦어도 2년, 최소한의 안정적인 주거 환경을 갖추고 고양이를 데려오고 싶어서 적어도 100가지 이상은 생각해 본 것 같은데 해결책이 아무것도 없다.
매일 야근. 주말 출근. 주말에 출근 안 하는 날에는 고양이를 보러 본가에 내려간다. 매번 갈 수도 없다. 나도 인간관계란 것이 있어서.
고양이와 같이 살고 있었다면 야근을 하고 집에 와도 행복했겠지, 본가를 오고 가는 시간 낭비도 없었겠지, 하는 생각은 수도 없이 했는데 계속해서 들고, 잠들기 전에도 들고, 전혀 무뎌지지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면 그 개가 떠오른다. 매우 속 편하게 키우고 있는 주인이랑.
잠에 들려고 누우면, 층간소음을 너무 겪어와서 그런지 잠에 들다가도 갑자기 쿵 소리가 울릴까 혼자 심장이 두근대면서 잠에서 깬다. 이전 집보다 층간소음이 없는데도 노이즈캔슬링 헤드셋을 끼고 잠에 든다.
밤마다 내가 현재 해결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생각을 수도 없이 하다가 울다가 겨우 잔다.
좀비 같은 상태로 또 회사에 간다. 답도 없는 일을 하고, 남의 집 개를 보고, 저녁을 먹고, 야근을 하고, 집에 온다.
주말에 본가에 내려가서 고양이를 껴안고 자면 10 몇 시간을 내리 잔다.
2시간 넘게 달려서 서울로 다시 올라오면..
밀린 집안일을 한다. 밀린 집안일을 하면 몇 시간이 지나가있다.
유튜브, sns를 보면 개노답 십새끼들 천지였다. 온갖 혐오의 배설물들 천지였다.
이런 생각들을 하는 사람들만 댓글을 달고 영상을 올리는 것일까? 아니면 정말 이 나라의 사람들 절반 이상은 이 모양일까?
진지하게 계속 고민했다.
하루의 구성이, 일주일의 구성이, 삶의 구성이 너무 단순해졌다. 내 생활 사이클은 존나 단순한데, 그 안의 모든 요소가 과잉이었다.
내가 지금 고양이랑 같이 살고만 있었어도, 내가 몇 살만 더 어렸어도, 코로나가 오기 전에 취업만 했어도....
등등 별의별 생각들을 하면서 결국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어렸을 적부터... 쉽게 말하면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라는 공부도 다 했고, 엇나가지도 않았다. 사춘기 시절 그 흔한 반항도 안 했다.
반항이라면, 부모님의 틀린 말에 참다 참다 맞는 말로 반박했던 것 밖에 없다. 그마저도 항상 말대꾸한다고 컷 당했음.
원하던 대학교에 와서는 실망도 많이 했다.
엄마는 나에게 그동안 너한테 쓴 돈 다 갚아라, 졸업 후에는 아무런 지원도 안 해줄 거다라는 말을 했다.
매일 같이 완전한 독립만을 꿈꿨다.
그렇게 괜찮은 사람이 되려고 무의식적 발악을 해왔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서른이 되어있었다.^^
아무튼..
요즘 이런 류의 생각들로 정말 막말로 걍 뒤지고 싶었는데
갑자기 좀 기분이 나아진 계기(?)가 있다.
그냥 틀어놨던 유튜브에서 한적한 일본 어느 골목길 풍경이 나오고 있었다.
작은 가게들도 있고, 몇몇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서점도 나오고....
진~짜 개 별거 아닌 영상이었는데
그 풍경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갑자기 기분이 나아졌다.
한 줄 요약하자면
내 음침(....)한 인류애 때문에 또 혼자 이 세상에 너무나도 큰 기대감을 걸고 있었던 게 아닌가?
스스로가 너무 많은 감정을 끌어안고 반응해서 과잉상태가 와버린 게 아닌가 싶음
좀 더..... 쉽게 생각해보려고 한다.
하나하나 다 깊게 파헤치려는 성격이 부정적으로 흘러가지 않게끔 경계도 하면서...
아 퇴사하고 싶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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