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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욕망을 발견하는 철학

by 라라쿠쿠 2023. 4. 19.

[처음 읽는 현대 철학 - 안광복]
을 읽고 이번에도 역시 주절주절 의식의 흐름 글
 
 
책 이름답게 구성과 내용이 현대에 맞춰져 있다.
난 그중에서도
[1장 - 무의식에서 실존까지, 삶의 의미를 찾아서 - 욕망을 발견하는 철학]
파트를 좀더 고민하면서 본 것 같다.
그래서 1장 내용 위주로 생각을 쓰기로 했당
 
 
 
 
-
 
 
 
"과학기술의 발전은 인류에 대한 환상을 없애버리곤 한다."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 - 인간이 사는 지구를 우주의 중심이라는 믿음을 깨는 지동설
찰스 다윈 - 인간은 원숭이 침팬지와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진화론
지그문트 프로이트 - 인간의 이성은 인간의 마음에서 아주 작은 일부이며 인간은 무의식 속 욕망에 휘둘린다
 
이렇게 '인류의 몰락'을 이끈 삼인방으로 언급된다.
 
예전에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을 재밌게 봤었다. 물론 좀 이해가 안 가는 부분들도 있긴 했지만..
갠적으로 꿈, 무의식에 관심이 워낙 많다.
이유는 내 삶에서 절대 분리할 수 없는 영역이라서...다..ㅎㅎ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꿈을 안 꾸는 날이 없었다.
물론 꿈은 누구나 꾸는 거지만, 나는 그냥 매일 생생하게 현실처럼 꾸고 잠에서 깨고 나서도 전부 기억한다.
그냥 눈 감았다 뜨면 아침이라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꿈을 꿔도 대부분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라는 것을 다 커서야 알았다 ㅋㅋ
그만큼 수면질이 최악이긴 하다;
솔직히 상쾌한 아침< 이란 건 정말 모르는 감각이고, 주말에 늦잠을 자고 나서도 피로가 풀리는 느낌은 아니다.
푹 자는 만큼 어차피 꿈을 스펙타클하게 더 꿔서ㅋㅋㅋㅋㅋ
 
그리고 꿈을 워낙 매일 생생하게 꾸는 만큼 꿈 내용에도 관심을 갖게 된다.
보통 나의 꿈 내용은 이렇다.
 
1.현실에서 겪었던 경험 중 (아마도) 인상 깊게 남았던 경험이 꿈으로 나타난다.
2.현재 걱정하거나 불안해하는 것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3.잊고 있던 / 아무 생각 없이 지나쳤던 것들이 대뜸 나온다.
4.전혀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는 것들이 나온다. (파고 들어가면 아예 나랑 관련이 없진 않다

그리고 이 내용들의 공통분모는 '욕망' 이다.
왜 이런 꿈을 꿨지? 하고 곰곰이 생각을 하다 보면
'~~ 하고 싶어서 / ~~ 하고 싶지 않아서' 라는 결론이 나올 때가 많다.
 
 
"나아가 꿈은 '무의식에 이르는 왕도'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꿈은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는 무의식의 노력이다."
 
>> 이와 관련된 내용이 '꿈의 해석'이다.
 
쓰다 보니 꿈의 해석 책을 읽으면서 생각을 적어놨던 부분들을 잠깐 소환시키고 싶어짐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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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세계를 풍부하게 갖는다는 것은 그 세계를 풍부하게 해석한다는 것이다."
 
이게 꿈의 해석을 읽게 된 계기였다.
 
우리는 남은 인생의 수많은 시간을 잠으로 보낼 것이다.
그리고 그만큼 꿈의 영역에서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눈 감았다 뜨면 아침인 사람들도 많이 있지만..
일단 나는 아니니까...
그래서 꿈은 일단 나부터가 절대 무시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꿈의 기억은 '정신적으로 일단 받아들인 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준다"
"'사소한 인상조차도 언젠가는 되살아날 수 있는 불변의 흔적'을 남긴다"
 
학문이 발달하기 이전의 사람들에게 꿈은 다른 세계에서 온 낯선 것이라는 생각에
꿈이 자신의 심리적 대응물이라는 점을 이해하지 않았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저 구절은 묘하게 위로가 되기도 했다.
완벽하게 없앨 수 있는 물리적 흉터는 있어도 정신적 흉터는 어떠한 형태로든
어딘가에 평생 남아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는데
그게 이상한 게 아니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정신은 의식의 집적물이라기보다는 무의식의 텃밭이며
인간의 욕구와 본능을 통제하는 무의식의 세계가 우리 내면에 버티고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어떤 측면에서는 프로이트를 인정하기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인간의 정신구조에 대한 인식에 있어서 아주아주 중요한 인물임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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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도 채워지지 못한 욕망은 결코 사라지는 법이 없다.
나아가 철저한 억압이 거듭되다 보면, 정작 자신이 어떤 욕구를 누르고 있는지조차 잊어버리는 지경에 이른다.
마음에는 불안과 초조가 가득하지만, 왜 그런지 설명할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만다는 뜻이다."
 
얼마 전에 '불안의 철학'이라는 책을 읽다가 만 적이 있었다. 공감이 잘 안 가는 부분이 많아서 안 읽히더라..
책의 주요 내용 중 하나가
'불안은 대상이 없고 목적이 있다'
라는 것이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었는데, 일반화 또한 할 수 없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목적이 있는 불안함보다는 '막연한' 불안감을 자주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위 구절을 읽고 나서 혹시 그 막연한 불안감이 저런 이유 때문일까 라는 생각을 잠시 했다.
 
나의 성격 상.. 내가 욕망하는 것을 잘 표출하지는 않는다.
보통 억압을 많이 하긴 한다. 되게 당연하게 억압할 때도 많다..
그런데 정말 이게 반복되면 뭔가.. 불안과 초조는 한가득인데
왜 그렇게 됐는지 스스로 설명을 하려면 한참을 더듬어 가봐야 아는 것이었다. (결국 모를 때도 많았다
 
그리고 불안+무의식에 관련해서

'자다가 몽유병으로 창문을 열고 뛰어내려 죽을까 봐 불안해서 잠에 들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결국 죽고 싶은 걸까 죽고 싶지 않은 걸까?'

라는 고민(?)을 한 적이 있다.
나의 무의식은 분명히 죽고 싶어 한다고 생각하면서,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상태로 욕망이 표출될까 봐 불안해하는 것
>> 이게 대체 뭘까?
사실 이거 몇 달을 생각했는데 아직 명쾌한 답이 안 나옴
 
 
"그러나 인간의 위치가 밑바닥으로 내동댕이쳐질수록 문명은 더욱 발전하고 성숙했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지구가 세상의 중심이 아니며 인간은 우주 변두리에 놓인 하찮은 존재임을 받아들였을 때,
인류는 제대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었다.
다윈의 진화론을 인정했다고 해서 인간의 존엄성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마찬가지로 프로이트가 무의식과 욕망을 낱낱이 드러냈다고 해서 인간은 추악해지지 않았다."
 
 
그래서 인류의 몰락은 곧 해방이었다.
인간은 무의식적 욕망을 어쩌지 못하는 약하고 여린 존재이며, 그 사실을 받아들여야 성장을 할 수 있다.
 
 
 
"세상은 이미 언어와 상징으로 잘 짜여 있다.
그 속에서 아이는 세상의 욕망을 욕망하게 된다.
내가 무엇을 바라야 할지, 어떤 욕망을 품어야 하는지가 이미 정해져 있다는 의미다. "
 
자크 라캉은 상징계에서 '나'의 욕망은 사실 내 욕망이 아니며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나는 대부분 타인의 욕망에 따라 살아왔다.
그런데 이 사실을 딱히 모르고 있었던 것도 아니다.
항상 마음속으로는 내가 왜? 누구 좋자고?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착한 아이^처럼 살았다.
왜냐하면…… 음 이유는 너무 갠적인 이야기라 안해야지.
 

부모애지 희이물망 이라는 가훈 속에서 아무렇지 않게 가스라이팅 당하면서 살았고
공부해서 시험 성적이 좋으면 어른들이 칭찬해 주는 게 좋았고(좋았다기 보단 편했다고 해야하나)
좋은 대학에 간다면 좋은 삶을 살 거라는 소리를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으며 자랐다.
뭐 나도 공부 잘해서 나쁠 거 없다고 생각했다.
시험 잘 봐서 친척이나 다른 사람들한테 자랑 좀 하게 해 달라는 소리도 아무렇지 않게 들었고, 들어주었다.
사실 공부 자체는 큰 스트레스는 아니었다. 뭐 수능 올 만점에 의대.. 이런 데를 가겠다고 한 것도 아니었고
그냥.. 공부가 딱히 어렵지 않았다. 그래서 더 말 잘 듣는 아이였을지도 모름
태어나서 유일하게 아무런 타인의 욕망 없이 내가 좋다고 말했던 게 '미술'이었다.
내가 원해서 초등학교 1학년때부터 쭉 미술학원을 다녔는데
한 번은 아빠 회사가 어려워지고, 미술은 돈만 들지 나중에 돈도 못 버는 일이다라는 소리를 어른들한테 또 엄청 들었다.
그래서 중학생 때 스스로 관뒀다.
그렇게 고3 때까지 공부만 하다가 대학교 진학 상담을 받는데
갑자기 아무런 준비도 없이 낭떠러지에 서있는 기분이었다. 정신이 번뜩 들었다고 해야 하나?
나는 재수를 하더라도 미대에 가겠다고 말했고 처음에는 당연히 다들 반대했다.
결과적으로는 이 분야에서 '누구나 알아봐 주는' 대학에 진학을 하게 되었고
또 칭찬받았다.
여기서 내가 잠시 착각했었다.
타인의 욕망대로 살아오던 내가 나의 진짜 욕망을 채우기 위한 선택을 했고 결국 그것을 이뤄냈기 때문에
앞으로 당연히 비교적 행복한 길이 펼쳐질 것이며, 자아실현을 어느 정도 했다는 착각이었다.
 
나는 대학에 가서도 타인의 욕망으로 살았다.
애초에 '좋은' 대학에 왔다고 만족을 했다는 것부터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대학 이 과에 와서 어떤 걸 내가 배우고, 어떤 걸 무시하더라도 그만큼 내가 원하는 것에 대해 시간을 투자하고자 하는
주체적인 판단력이 사라져 있었다.
교수님이 하라는 대로 하고, 교수님이 부당한 평가를 해도 아무 말도 못 하고 혼자서 참다가 스트레스성 병들을 달고 살았다.
학교에서 알려주는 게 하나도 없다고 느끼면서도 불만을 표출하지 못했다.
학과 행사에도 누구보다 열심히 꼬박꼬박 참여했다.
남들은 대외활동이니 뭐니 할 때 교내 전시들을 참여했다.
그 좋은 대학에서 할 수 있는 교내 활동만 열심히 해도 무언가 얻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이었다.
 
그러다 졸전을 하기 시작하는 4학년 때에 멘탈이 아예 나가버려서 학교 상담소를 찾았었는데
거기서 한 번은 자기가 인생에서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들을 몇 가지 뽑게 했다.
 
그리고 그중 하나가 '인정'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수치로 나타나는 성과, 결과에 대한 칭찬, 비난을 받고 자란 나는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지 못하면 아무런 성과도 못 올렸다고 생각하는 어른이 되어있었고
스스로가 어떤 분야에서 다수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일을 하게 된다면 실패한 삶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인정을 받으려면 누구보다 잘해야 하고 완벽하게 해내야 하는데 자꾸 그러질 못해서 멘탈이 너덜너덜한 상태였다.
졸전도 그랬다. 아무리 아무도 관심이 없다고 하더라도, 누가 봐도 인정해 줄 만한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이 엄청 심했다.
‘나의 만족’이라고 치장하던 완벽주의조차도 결국 타인에서 기인한 거였다.
 
이렇게 나의 성과의 기준은 언제나 밖 / 타인한테 있었던 것이다.
사실 이건 어릴 때부터 차곡차곡... 쌓아온 경험들의 결과물이라서 바로 지금 생각을 바꾼다고 뿅 하고 바뀌진 않을 것이다.
 
그래도 근래에 많은 노력을 하고 있긴 하다.
> 많은 노력 : 전 직장 퇴사 ㅋㅋㅋㅋ
 
웃긴 건 내가 이런데 정작 남이 나한테 고민을 얘기하면
'다른 사람이 뭐라 하든 너가 원하는 걸 해야지' 라는 말을 해준 적이 많다. (그것도 진심으로)
그리고 주변인들은 다들 나에 대해서 얘기할 때
’자기가 ^원하는 걸^ 하며 그걸 또 잘 해내는 사람’
라고 많이 말한다.
뭔가 모순투성이다.
 
내 기질 자체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것보다 자신의 욕망을 훨씬 더 우선시하고,
자아실현이 인생 목표라면 목표이며
'내'가 원하는 것에 대해서 과감해질 때도 많다. 
그런데 자꾸 원치않게 브레이크가 걸려버리는 것 같아서
+ 그걸 인지하고 있음에도 매번 멈칫하고 고민하니까 답답하다ㅎㅎ
 
그나마 다행인 건 내가 느끼는 게 '절망하고 있음을 깨닫는 절망'이라는 것이다ㅋㅋㅋ
 

 
"하지만 인간은 상징계를 넘어설 수 없다. 넘어서는 순간 ‘정신질환자’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인간은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언어와 상징으로 짜인 타인의 욕구 속에 들어와 있다.
그 때문에 이 바깥으로 나갈 수 없다. 언어로 짜인, 자신을 옥죄는 타인의 욕망들로부터 벗어나기를 그저 꿈꿀 따름이다."

 
현재 나는 무슨 욕망을 좇길래 이런 생활을 하고 있나 생각했다.
물론 지금 하는 일들은 내가 욕망하던 일들이긴 하다.
그런데 그 일을 하면 다른 중요한 욕망을 포기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나의 가치관 속에서 어느 욕망을 좇아야 하는지를 매일 고민하는 중이다.

결국 자크 라캉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진정한 자신의 욕망을 좇으라는 것인데
욕망은 따로따로 분리되어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것이든, 자신의 욕망이든 개인과 상황에 따라 그 욕망들은 서로 어느 정도 공유하는 관계에 있다.
자신의 욕망을 추구한다고 해서 타인의 욕망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도 있고,
자신의 욕망 하나를 위해서 다른 욕망은 포기해야만 할 때도 있다.
 
그리고 또 이걸 판단하는 기준은 이전 글에서도 썼듯이 나만의 가치기준으로 연결된다.
이론적으로는 알지만 .. 사실 이게 가장 어려운 것 같다..
애초에 난 자기 확신이 뚜렷한 사람이 아닌 만큼 오로지 생각만 할 시간도 너무 필요한데 상황이 따라주질 않는다.
정시퇴근+정해진 휴일 이것만 보장되었어도 이 정돈 아녔을듯ㅋㅋㅋㅋ
 
 
 
 

 
"의사들은 환자 마음에 문제가 생긴 ‘원인’을 파고들었다.
이렇게 해선 사람들이 과거의 상처와 잘못에 더 매달리게 될 뿐이다.
....
중요한 것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다.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목적을 바라보며 일상을 가꿔야 한다."
 

 
내가 일기?를 쓰다가 손이 너무 아파서 관뒀다고 했었는데
위와 같은 이유도 있었다.
내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 를 혼자 생각하면서 글을 쓰다 보면 결국 항상 초점이 과거에 가게 되었다.
물론 원인을 파고들다 보니 당연한 거였다.
그리고 되돌릴 수 없는 과거의 상처에 계속해서 매달리니까 감정소모가 어마어마했다.
 
원인 파악은 한 번 깨닫는 것으로 충분한 것 같다.
 
솔직히 아직도 잘은 못하지만... 원인이 아니라 목적을 보고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보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사실 이럴 땐 사랑하는 우리 집 고양이를 생각하면 좀 미래지향적인 인간이 된다)
 
 
 
 
 
"진정 자기답게 사는 사람들은 ‘철학적 신앙’을 품기 마련이다.
이는 인간의 삶에는 이익을 좇고 번식과 생존에 매달리는 차원을 넘어선,
고귀하고 숭고한 무엇이 있다는 믿음을 일컫는다.
초월적인 가치를 믿고 이를 향해 나아가는 자들은 결코 무너지거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세상이 그를 죽일 수는 있어도 이길 수는 없는 사람’,
야스퍼스가 말하는 실존적인 삶이란 이런 자세를 뜻하는 듯싶다."
 
 
스스로 바라는 모습이긴 함
사실 극단적으로 생각하면 내가 죽고 살고에는 큰 관심이 없다.
뭐.. 이게 말 그대로 가치관이 그렇다는 거지…죽든말든 이런 뜻이 아니다 ㅋㅋ (인간은 뭐 죽든가 드립 젤 많이 치는 사람

정작 실제로는 먼저 떠나보낸 친구가 있는데 10년이 지났음에도 그 사건을 정신적으로 완전히 분리하지 못하고있다.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건 아니다. 그냥 그 죽음과 관련된 무언가에 초조해한다거나 자꾸 나를 연관지어서 죄책감을 만들어 낸다거나 한다.

어쨌든 우주의 관점에서는 어떤 생명체든 간에 살아있는 게 오히려 이상한 거다.
죽어있다고 말하는 상태의 원자들이 모여서 잠깐 생명체가 되었다가 다시 죽음으로 돌아가는 것 뿐이다.
보통 이걸 그만큼 살아있는 찰나의 순간이 소중하다는 관점으로 이야기가 되는데
물론 그런 생각도 들긴 하지만, 동시에 나는 그만큼 >아무것도 아니다 <라는 생각도 든다.
오로지 이 생각만 있다면 당연히 정신적으로 무너진다.
그래서 내가 자연스럽게 필요로 했던 것이 야스퍼스가 말하는 철학적 신앙과 실존적 삶의 자세다.
 
 

 
"진정한 진리는 만유인력의 법칙이 아니다. 진리는 중력을 뿌리치고 새가 하늘 높이 날아오른다는 사실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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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엔 [이방인]을 읽기로 했다.
읽은 책이긴 한데 다시 읽고 싶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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